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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얼

咸安趙氏 大宗會

현조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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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려(趙 旅)

    페이지 정보

<요약>


어계선생(漁溪先生) 조 려(趙 旅, 1420년(세종.2)~1489년(성종.20)

- 자(字)는 주옹(主翁)
- 호는 어계(漁溪)
- 시호(諡號)는 정절(貞節)
- 조선 초기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분
- 1698년(숙종.24)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상세보기>


어계선생(漁溪先生) 조 려(趙 旅, 1420년(세종.2)~1489년(성종.20)

조선조 초기 단종(端宗)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분임. 자(字)는 주옹(主翁)이며 호는 어계(漁溪)요 시호(諡號)는 정절(貞節)이시다.

고려조 말엽에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금은(琴隱)공 열(悅)의 손자이며 사복시 정(司僕寺正)의 증직(贈職)을 받은 안(安)의 아들로 서기 1420년(世宗. 2)에 함안의 평광리 사저에서 탄생하셨다. 1453년(端宗. 1)에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태학관(太學館)에서 공부하던 중 세조(世祖)가 조카인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그 불의에 항거하여 과거의 뜻을 버리고 함께 공부하던 관생들과 작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 평생을 단종(端宗)을 사모하면서 은둔생활을 하셨다. 1489년(成宗. 20)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70이었다.

일찍이 지으신 구일등고의 시속에는 선생의 단종(端宗)을 사모하는 지극하신 감정이 은미하게 표현되어 있다. 풀이해보면, '머리 돌려 해 저문 강산을 바라보니 땅 넓고 하늘 높아 사염(思念)이 아득하네. 희헌(羲軒)의 세상 멀어져 슬프기 그지없고 화훈(華勳) 시절 못 만나니 마음 절로 상하구나. 가엷어라. 이 늙은이 오래 삶이 괴롭구나. 마음속 그리운 님 잊을 수가 없다네.’하셨다.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경은(畊隱) 이맹전(李孟專), 관란(觀瀾) 원호(元昊), 문두(文斗) 성담수(成聃壽),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등과 함께 향사 되고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의 숙모전(肅慕殿)에 김시습(金時習), 조상치(曺尙治), 이축(李畜), 정지산(鄭之産), 송간(宋侃), 성희(成熺)와 함께 봉안(奉安)되고 계신다.

선생은 의젓한 풍채(風采)와 용모(容貌)로 어릴 때부터 지혜와 덕성(德性)이 남달리 뛰어나니 주위의 촉망이 자못 컸었다. 성장하면서 스스로 학문에 힘써 나태하지 않았으며 심오한 의리를 통투(通透)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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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학관(太學館)지금의 성균관
2) 희헌(羲軒) ;태호복희(太昊伏羲)와 황제헌원(黃帝軒轅)을 이름
3) 화훈(華勳) ;堯(요)와 舜(순)이니 중국 상고시대의 聖君(성군)
4) 이맹전[李孟專, 1392~1480 ]조선전기의 문신. 본관:碧珍(벽진)호:耕隱(경은),시호貞簡(정간) 자伯純(백순) 활동분야 ; 정치
5) 원호[元昊,?~?]조선시대의 生六臣(생육신)중의 한 사람. 본관;原州(원주)호:霧巷(무항)·觀瀾(관란) 자 子虛(자허), 시호 貞簡(정간)
6) 성담수 [成聃壽 ,?~1456]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 昌寧(창령) 호 : 文斗(문두) 자; 미수 활동분야 : 정치
7) 남효온 [南孝溫 ,1454~1492]조선 전기의 문신.본관 :宜寧(의령) 호:秋江(추강)·행우·최락당 자; 伯恭(백공), 시호 文(문)貞(정)
주요저서 : 《六臣傳(육신전)》 《秋江集(추강집)》 《秋江泠話(추강령화)《師友名行錄(사우명행록)》《鬼神論(귀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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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로 삼았으며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인용하여 모방적인 글을 짓거나, 헛되게 뜻을 알지 못한 채 암송하는 과거를 위한 공부는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아니하였다.
(우참찬(右參贊) 이미(李薇)의 묘갈명 중에서.)

항상 고요한 방에서 성현(聖賢)의 경전(經典)에 깊이 잠겼으며 심오한 의의(意義)를 깨닫게 되면 침식을 잊을 만큼 즐거워 하셨다.

간혹 지팡이를 끌고 숲 속의 시냇가를 산책하면서 흥겨워지면 붓을 잡아 시를 읊되 꾸밈없이 순박하니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였다 하겠다.

부모의 뜻을 받들어 효성은 지극하였으며 즐겨하는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것은 넉넉지 못한 살림 속에서도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부모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고 부모가 돌아가신 때에는 슬픔을 다하여 장례를 치렀으며 예법은 한결같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랐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에는 보리밥과 채 나물로 대접하고 화제는 농사일이 아니면 야담 따위였으며 가난하였으나 항시 마음은 편하게 즐겼으며 화락한 모습과 강의한 기상을 의연하게 비췄으며 구슬을 깊이 간직한 듯 하였다. 경박스럽고 화려한 것을 멀리 하였으며 성정이 교만하고 과격한 사람을 통절히 배제하니 그와 같은 자는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

선생은 돌아가신 후의 신후지(身後地)를 정암강(鼎巖江)의 위쪽 갑 좌의 언덕에 정해 놓고 하신 말씀이 "정암강 물이 끊어져야 내 자손이 끊어질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또,"내 자손은 원북 땅에서 세거 할 것이나 오랜 세월 후에 쇠퇴(衰退)하게 된다면 산승칠발안(山僧七鉢案) 오봉상대처(五峯相對處)-지리 풍수설에 의한 비결-에 옮겨 산다면 다시 크게 번창 할 것이다." 하셨다.

전기(傳記)에 이르기를,
공의 성(姓)은 조씨(趙氏)요 이름은 려(旅)며 자는 주옹(主翁)이며 함안인(咸安人)이요 고려의 원윤(元尹) 단석(丹碩)의 후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출중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문장에 능통하였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태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중 단종(端宗)이 본의 아니게 세조(世祖)에께 왕위를 물러주자 다시 과거시험에 응시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은거하면서 세상을 마쳤다.

공은 풍수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산수 경개가 아름답던 함안의 원북동에 삶의 터를 골라잡았다. 처음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수목이 하늘을 뒤덮은 험난한 곳이었다. 공은 나무를 벼내고 풀을 깎아 터를 닦아 집을 짓고 사니 그 뒤로 자손이 번성하여 고관(高官)과 존귀(尊貴)한 인물이 끊이지 않았으며 즐비하게 집이 들어서서 동네가 가득 차 마침내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자손이 대대로 살고 있다.

공은 스스로 호(號)를 어계(漁溪)라 하였으며 문집이 세상에 간행되기도 하였으나 그 속에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지 않아 그 언론행적(言論行蹟)을 소상하게 알 수 없다.

논평하기를 "세종대왕 시절에는 나라에서 교육을 진흥시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성대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조(世祖)가 왕위에 오르자 당시의 많은 인사들이 은(殷)나라 사람들이 주(周)나라의 제사에 참여하듯 세조 조에 봉직하면서 난을 피하였다. 오직 성삼문(成三問)등 육신(六臣)의 사적(事蹟)은 남추강(南秋江)전에 실려서 지금까지도 혁혁하게 사람들의 이목에 비치고 있다.

공 같은 이는 태학의 학생으로 단종(端宗) 조에서 벼슬살이를 아니 하였으니 그토록 명석한 재질로 본 뜻을 버리고 새로운 조정에 나아갔다면 부귀 영화한 고귀한 자리를 아주 쉽사리 얻을 수 있었음에도 도리어 굳은 절개로서 항거하여 그 자리를 떠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생활 하면서도 아무런 번민도 없었으며 늙어서 생을 마치도록 후회하지 않았으니 아아! 재덕이 뛰어난 선비로써 도리를 중히 여기고 정의감(正義感)이 깊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이는 공의 마음이 곧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서산(西山)에서 고사리 캐어 먹은 뜻과 같음을 알 수 있으며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과는 한 시대의 정신적 교유(交遊)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뒷날 역사가가 붓을 잡아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김시습과 함께 후세에 전한다면 죽은 자도 이 뜻을 알아 굳세고 씩씩한 그 정신은 외롭지 않을 것이요, 또한 후세 사람이 나를 몰라준다 하드래도 한탄하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창랑(滄浪) 성문준(成文濬) 지음.

세상에서 일컫기를 김시습(金時習)을 동방의 백이(伯夷)라고 한다. 홀로 우뚝 서서 특이한 행실이 있는 선비였으나 친구들과 교제도 끊고 처자식도 버리고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으니 이는 윤리와 도덕을 숭상하는 법도아래에서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영남의 함안 땅에 백이산 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옛날 어계 선생 조려(趙旅)가 은거했던 곳이며 종신토록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고 낚시질로 스스로 낙을 삼았으니 그 마음은 김시습의 마음이요. 그 자취는 감춰져 사람들이 무어라고 칭송할 수 없었으나 성인(聖人)의 세상을 만났더라면 은미했던 행적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조 시절에 절의(節義)가 가장 성대한 시기는 단종(端宗)과 세조(世祖) 때였으며 그 중에서 육신의 충절을 으뜸으로 손꼽는다.

그 외의 업적을 쌓은 재야의 현재(賢才)가 어찌 그렇게도 많았을까?
이렇듯 절의가 지켜질 수 있었음은 세종대왕이 인재를 많이 양성한 까닭이니 아아! 참으로 그 치적(治績)은 컸도다. 이율곡 이1)(李栗谷 珥) 선생께서 일찍 김시습을 논평하면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김시습이 존재한 것을 다시 알지 못하게 한다손 하더라도 어찌 민망하게 생각하리요? 하였으니 그의 심사를 모두 이해한 진실한 말이라 하겠다. 공이 지켜낸 대의(大義)는 곧 천지를 지탱하고 만고에 뻗쳐 변치 않을 것이니 공이 스스로 그 흔적을 민멸(泯滅)시키고자 한들 민멸(泯滅)시킬 수 없는 것은 곧 하늘의 이치이니 공인들 하늘의 뜻을 어찌 할 수 있으리오? 하였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신도비명(神道碑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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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이 [ 李珥 , 1536~1584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 덕수 호 : 율곡· 문성 활동분야 : 정치 출생지 : 강릉 1548년(명종.3)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23세때 예안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 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 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동호문답(東湖問答)》 《만언봉사(萬言封事)》 《성학집요(聖學輯要)》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 하였고, 성혼과 ‘이기 사단칠정 인심도심설(理氣四端七情人心道心說)’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였다. 이황은 이기론에 있어서는 기뿐만 아니라 이도 발한다는 이기호발설을 견지하여‘이발이기수지 기발이 이승지(理發而氣隨之氣發而理乘之)’를주장하였는 데, 이러한 견해는 사단칠정론에도 그대로 이어져 순선(純善)인 사단(四端)은 이발(理發)의 결과이고 유선악(有善惡)인 칠정(七情)은 기발(氣發)의 결과이므로 결국 사단과 칠정을 별개로 취급하여 '사단대칠정’ 논리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이는 이발을 인정하지 않고 ‘발하는 것은 기이며 발하는 까닭이 이’라고 하여 '기발이이승지’의 한 길(一途)만을 주장하면서 사단칠정이 모두 이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단지 칠정은 정(情)의 전부이며, 사단은 칠정 중에서 선한 것만을 가려내 말한 것이라고 하여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칠정포사단’의 논리를 전개하여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에 찬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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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일등고시(九日登高詩)의 발문(跋文)
"삼가 생각하니 우리 선조 어계(漁溪)공은 세종2년 경자(庚子 1420)에 태어나셨다. 단종(端宗) 원년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셨으나 수년 후에 벼슬을 단념하고 스스로 행적을 감추고 산수사이를 소요하시면서 어계처사라 하였다. 살림은 검소하게 절약하셨으며 치산(治産)에 힘쓰지 않으셨으며 신의(信義)로서 향리에서 행세하셨고 은거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감추려 한 뜻은 김시습과 더불어 서로가 닮으셨다.

공은 덕을 닦아 지극한 경지에 이른 분이시다. 가슴속 품은 뜻을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미묘하셨기에 사람들이 그 숨은 절의심(節義心)을 알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세에서도 알지 못했듯이 당시에도 역시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몰랐듯이 한집안 자손도 또한 아는 자 없었으니 아아 참으로 지극한지고! 그러나 마음속의 생각은 반드시 외형으로 드러날 뿐 아니라 숨길수도 없는 이치이니 남겨지신 시문 중의 구일등고시(九日登高詩)를 읊어보면,

"희헌(羲軒)의 세상 멀어져 슬프기 그지없고, 요순(堯舜) 시절 못 만나니 마음절로 상하구나"라고 하셨으니 이 시구는 공의 본정을 부득이 밖으로 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간절한 심사였었다. 그렇지 않다면 국추(菊秋)의 좋은 시절 뒷동산에 오르는 풍속은 마음 아프게 개탄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지금을 비추어 옛일을 추억하여 시대를 언짢아하시며 세상을 슬퍼하신 뜻을 자연적으로 그 시구 사이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백이가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 캐며 노래하기를 신농(神農) 우하(虞夏) 홀연히 다 죽고 없으니 내 장차 어디로 가야 하나?"했으니 공이 지은 시의 정감은 또한 여기에 근원하였음 인져!

숨어 살면서 크나 큰 덕을 쌓은 그 보답이 자손의 대에 이르러 경사가 겹쳐 발운 하게 되었으니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격언이 거짓이 아닌 참된 말임을 진실하게 알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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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농(神農) ;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天子].중국의 농업·의약 ·음악 ·점서(占筮) ·경제의 조신(祖神)이며,중국문화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2) 우하(虞夏):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天子]요(堯)와 순(舜)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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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손 임도(任道) 지음.

동학사(東鶴寺) 초혼각(招魂閣) 사적(史蹟)

세조 4년(1458) 봄에 왕은 친히 동학사(東鶴寺)에 명하여 노산군(魯山君)의 고혼을 불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아울러 초혼각(招魂閣)을 지어 유생(儒生)과 승려(僧侶)로 하여금 수호하게 하였다. 김시습(金時習), 조려(趙旅)외 유학자 6명과 승려 2명 등 열 분이었으며 산해(山海) 어과(魚菓)를 차려 놓고 각 지에서 모여든 인사와 더불어 상왕(端宗)을 제사하였다.
동학사(東鶴寺), 초혼각(招魂閣) 사적(史蹟)중에서.

치악산(雉岳山) 제명록(題名錄)

관란(觀瀾), 원호(元昊)가 첫 머리요, 다음이 조어계(趙漁溪)선생, 그 다음에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순으로 쓰여 있고 성명 아래에는 각각의 별호도 표시되어 있다. 제일 밑 부분에 경태(景泰)년 삼월 기망(旣望)에 치악산(雉岳山) 돌에 새긴다 하였으나 년 자위에 한자가 누락되어 몇 년인지 알 수 없다. 치악산은 원주(原州)의 진산(鎭山)이며 원주는 원호공의 출생지다.

치악산에 올라 방초를 깔고 세 어른이 마주 앉은 정경을 추상해보면 저 백이산 에서 채미가 부르던 옛 일이 상기되며 산을 안고 도는 강물을 굽어보면서 초사(楚辭)의 낭만을 읊어 한탄 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옛 자취를 더듬어 그 어른들의 심정을 추상해보니 누구인들 쓸쓸한 감회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아아! 세조 조에 허리 굽혀 신사(臣事)하였다면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는데도 외딴 산골짜기 한 조각 바위에 이름을 새겨 찬 서리 내리고 비바람 치는 곳에 쓸쓸하게 천추에 이름 남기려는 것일까?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로다.

이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일신의 영화를 위하여 그 이름을 묻는 것보다 역경을 달게 받아들여 대의(大義)를 위해 절의의 정신을 천추에 남기게 하는 것이 인생으로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하였다.

참판(參判) 목만중(睦萬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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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학사(東鶴寺)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反浦面)에 있는 절
2) 계룡산 초혼각지 [ 鷄龍山招魂閣址충청남도 공주시 反浦面(반포면) 鶴峰里(학동리) 동학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지.1456년(세조 2)에는 金時習(김시습)이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세조가 端宗(단종)을 물리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죽은 死六臣(사육신)을 위해 초혼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3) 초사[楚辭]중국 초(楚)나라의 屈原(굴원)과 그 末流(말류)의 辭(사)를 모은 책, 또는 그 문체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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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계선생집(漁溪先生集)

선생의 문집은 중종(中宗) 11년(1516)에 공의 손자인 진산(珍山)공 동호(銅虎)의 넷째 아들 판결(判決)공 적(績)이 유고(遺稿)를 정리 편찬하여 백형 참판(參判)공 순(舜)과 절친했던 진천군(晉川君) 강혼(姜渾)에게 서문(序文)을 받고 발간하였으나 병화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존되지 못해 몹시 안타깝게 여겼던 차 영조(英祖) 16년(1740)에 관아재(觀我齋) 영석(榮)이 의령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함안 원북에 거주하던 족종(族宗) 야(埜)가 수집해 뒀던 공의 시문들을 갖고 와서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이것을 근거로 하여 재간할 것을 의론 하였다. 관아재(觀我齋) 는 이 사업은 진정한 나의 소망이었다 하고 서로 상의 하에 보정(補整) 계고(稽考)하여 유집을 발간하면서 우찬성(右贊成) 박필주(朴弼周)에게 서문을 받고 경위를 소상히 밝힌 발문을 첨부한 어계선생집이 전해지고 있다. 구일등고시(九日登高詩)도 여기에 실려 있다. 아래에 풀이하여 옮겨 본다.

1901년에는 자손인 성호(性昊), 성순(性恂) 등이 송병선(宋秉璿)의 서문과 이종기와 성호의 발문(跋文)을 붙여 권3에 시(詩), 시장(諡狀), 서(書), 축문(祝文), 추감록(追感綠)을 추가하여 발간하였으며 성균관 대학교와 국민대학교의 도서관등에 소장되어 있다.(※3권 )

구일등고(九日登高)
구월 구일은 重陽節(중양절) 좋은 계절 즐기고자 산등성이 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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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혼 [姜渾 ,1464~1519]조선 전기의 문신.본관:晉州(진주) 호:木溪(목계) 자;士浩(사호), 시호;文簡(문간), 晉川君(진천군)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木溪集(목계집)》
2) 박필주[朴弼周,1665~1748]본관 潘南(반남), 자 尙甫(상보), 호 여호(黎湖)·요계(蓼溪), 시호 文敬(문경)이다. 주요저서 : 《黎湖集(여호집)》《讀書隧(독서수)箚(차)》 《朱子往復彙編(주자왕복휘편)》
3) 송병선[宋秉璿,1836~1905]본관 恩津(은진).호淵齋(연재).자 華玉(화옥).시호 文忠(문충). 學行(학행)으로 천거 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뒤 書筵官(서연관) 經筵官大司憲(경연관대사헌)·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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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뭉게뭉게 기러기 떼 날라 오고,난초 잎 빼어나고 국화꽃 향기롭네.
산 밝고 물 푸른데 연기 가듯 참담(慘)하고, 바람 불고 햇살 맑은데 가을 기운 처량(凄凉)하네
갈대꽃은 강가에 눈발처럼 휘 날리고, 단풍잎은 양지쪽을 비단같이 물 들였네.
두목(杜牧)은 호방(豪放)하게 취미(翠薇)산에 올랐고, 도연명(陶淵明)은 술 심부름꾼 오기만 기다렸네.
천년 전 풍류(風流) 세월 어제일 같았는데, 지금도 그 기상 서리 발처럼 엄숙하네.
머리 돌려 해 저문 강산을 바라보니, 땅 넓고 하늘 높아 사염(思念)이 아득하네.
희헌(羲軒)의 세상 멀어져 슬프기 한이 없고, 요순(堯舜) 시절 못 만나니 마음 절로 상하구나.
침통히 읊조리는 붓끝에는 천지가 망막하고, 흠뻑 취한 술잔 앞에 세월은 유유 하네 가엷어라 이 늙은이 오래 삶이 괴롭구나, 마음속 그리운 님 잊을 수가 없다네.

九日登高
九月九日是重九 欲酬佳節登高岡
白雲飛兮雁南賓 蘭有秀兮菊有芳
山明水碧煙慘 風高日晶氣凄凉
荻花吐雪江之滸 楓粧紅錦山之陽
杜牧旣上翠微峀 陶潛悵望白衣郞
千載風流如昨日 至今豪氣凜秋霜
回頭擧目江山暮 地闊天高思渺茫
羲軒遠矣悲何極 華勳不見心自傷
沈吟筆下乾坤 爛醉樽前日月長
嗟哉潦倒生苦晩 懷佳人兮不能忘

생육신 합집(生六臣 合集)

1832년 어계선생 조려(趙旅)의 후손인 조기영(趙基永)이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경상도 관찰사 김석순(金錫淳)이 경비를 부담하여 유상조(柳相祚)의 서문을 붙여 용계(龍溪)서원에서 간행한 9권 3책의 필사본인 생육신 합집은 각 개인문집에서 뽑아 엮은 것이다. 어계공의 시는 40수가 실려 있다.

규장각(奎章閣) 소장본 중에서.

호배도강설(虎背渡江說) *호랑이 등에 업혀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
노산군(魯山君을 영월에 안치하고 청령포(淸泠浦) 나루를 누구나 마음대로 건널 수 없게 조치하였다. 어계 선생의 거주지인 함안과는 거리가 오백여리나 되는데도 선생은 한 달에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문안을 드렸으며 중도에 관란(觀瀾) 원호(元昊)의 집에서 유숙하였고 매일 밤 성수(聖壽) 만세(萬歲)를 하늘에 기도하였다. 정축년(1457) 10월 이십사일에 노산군의 승하소식을 들은 선생은 밤낮을 달려 청령포(淸泠浦)에 당도하니 한 밤중이었으며 나룻배도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어 찾았으나 건널 수 있는 방안이 없어 가슴은 답답한데 날은 점점 밝아져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강물도 함께 오열하였다. 마침내 의관을 벗어 등에 지고 강을 헤엄쳐서 가려 하던 차에 홀연히 등짐을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아 돌아보니 크나큰 호랑이였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 천리 길 분상(奔喪)에 이 강을 못 건너고 있노라. 이 강을 건너서 왕의 옥체를 염습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한다면 창해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이거늘 너는 어쩌자고 나를 당기는고?” 하니, 호랑이는 머리를 숙이고 창포위에 엎드렸다. 그 뜻을 알아 챈 선생이 즉시 그 등에 업혀 강물을 건너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다만 두 사람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통곡 사배하고 시신의 수렴(收殮)을 마치고 문을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가 다시 강을 건너 주었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은 “호랑이가 청령포를 건너 주어 조옹(趙翁)이 노산군(魯山君)을 수렴 하였다네”(虎渡淸泠浦 趙翁殮魯山 )라는 시를 남겼다.

<<영월읍지, 대동기문, 강원도지중에서 >>

어게선생 조려(趙旅) 사적비원

영월의 청령포에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의 사적비가 1987년에 영월 충절 현창회(寧越忠節 顯彰會)가 주관(主管)하고 자손들의 헌성(獻誠)으로 호랑이 상을 좌대(座臺)로 하여 건립되었다. "선생의 행적(行蹟)에 대하여 역대 조정으로부터 포증(褒贈)이 있어 왔고 숙모전(肅慕專)과 서산서원(西山書院)을 위시한 각처 원사(院祠)에 사림(士林)의 향사(享祀)가 거행되고 있어 선생은 이미 천 백대 불후(不朽)의 화신이 되어 있지만 이곳의 비는 또 달리 선생을 기념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하였다.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이 지은 비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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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령포[淸泠浦]강원 영월군 남면(南面) 광천리(廣川里)에 있는 지명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西江(서강) 이곳에 端宗(단종)‘이 유배되었으며 陸地孤島(육지고도)’라고 표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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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창절사(彰節祠) 경내에 팔현사(八賢祠)가 있었다. 팔현사(八賢祠)는 숙종(肅宗) 때에 창건하여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이맹전(李孟專), 원호(元昊), 조려(趙旅), 성담수(成聃壽)와 권절(權節), 정보(鄭保) 등을 병향(倂享) 하였으나 사액(賜額)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조(英祖) 때 국령으로 훼철 되었다.
영월읍지 중에서

서산서원(西山書院)
1703년(肅宗 29, 계미) 봄에 함안의 유림이 뜻을 모아 건립한 서원에 경상도(慶尙道)의 유학(儒學) 곽억령(郭億齡) 등의 상소에 의하여 생육신을 향사할 것을 재가 받았다.
1713년(肅宗 39, 계사) 경상도(慶尙道) 유학(儒學) 손경장(孫慶章) 등의 상소에 의하여 서산서원이라는 액호(額號 : 나라에서 하사한 현판)를 내려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735년(英祖 11,) 에 동헌의 외부 경관이 좋은 지점을 택하여 정자를 건립하여 채미정(采薇亭)이라 이름 하였다.
1865년(高宗 2)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서산서원도 훼철 않을 수 없었다. 매년 삼월의 중정(中丁)일과 구월의 중양절(重陽節)에 미천제(薇薦祭)와 국천제(菊薦祭)를 거행하였으나 서원 훼철로 채미정에서 가을에만 향사를 모실 수밖에 없었는데 1902년 서천(西川) 정규(貞奎)가 유림과 의논하여 서산서당(西山書堂)을 건립하여 삼월의 미천제(薇薦祭)도 올리며 학문의 강론도 하였다.
1979년에 어계선생의 후손들이 서원복원을 발의하여 도비(道費)의 보조와 각 처의 유림과 재외 재내의 후손들의 성금으로 1984년에 현재의 위치에 서원을 복원하고 생육신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훼철 당한지 116년만이었으며 충의사(忠義祠), 양정당(養正堂), 경의당(敬義堂), 상의재(尙義齋), 전사청(典祀廳), 소청각(淸閣), 육각정(六角亭) 7동과 경앙문(景仰門), 숭의문(崇義門)이 있으며 정절공의 사적비와 생육신의 사적비등이 건립되어있다.

응암재(鷹巖齋)
함안 법수면 응암에 소재하는 어계선생의 재실이다. 1779년(정조3.己亥)에 창건되었으며 몇 차례의 중수를 거듭하였고 1994년에 국내외의 많은 자손의 헌성금(獻誠金)으로 현존하는 건물을 1995년12월에 완성하였다.

용계서원(龍溪書院)
용계서원(龍溪書院)은 경북 영천시의 자양면(紫陽面)에 있으며 1684년(숙종 10)에 창건되었으며 처음 이맹전(李孟專)을 향사 하였으나 1759년에 원호(元昊), 성담수(成聃壽), 조려(趙旅),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의 다섯 분을 추가하여 병향(倂享 )하였다.

1786년에 사액서원이 되었고 1868년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1945년에 복원하였으나 사당은 복원되지 않았다.

서산서원의 생육신 향사 청원 상소문

엎드려 아뢰옵건대 도의(道義)를 장려하는 길은 절의(節義)를 숭상하는 것이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하며 절의를 숭상하는 것은 그를 보답하여 제향 올리는 것 보다 더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신들의 생각은 단종(端宗)이 왕위를 물러난 때에 진사였던 조려(趙旅)께서 은둔한곳은 함안으로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었고 그 곳에는 또한 세상에서 말하는 백이산이 있습니다. 아아 가엾어라 조려(趙旅)의 절의가 고죽(孤竹)보다 못지않으며 이 산의 이름 또한 오랜 세월과 먼 거리의 간격이 있음에도 서로가 부합되는 바 없지 않습니다. 마침내 도내의 선비들이 의논하여 그의 신주를 모시고 그 영혼에 향사하는 예의를 다했던 것입니다. 또 상의하기를 단종이 손위하던 그 당시 죽음으로써 그 절개를 온전히 지킨 분은 성삼문(成三문(問))과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월(柳誠源), 유응부(柳應孚) 등 여섯 분이요 살아서 그 절의를 지킨 분은 원호(元昊), 이맹전(李孟專), 성담수(成聃壽), 조려(趙旅),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등이었습니다.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은 무덤도 같은 언덕에 자리하였고 향례도 같은 사당에서 모시듯이 이 여섯 분 역시 그 유례처럼 함께 향사 모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조려(趙旅)는 함안인 입니다. 그 땅에 수 칸의 사당을 세워 여섯 분을 함께 향사 한다는 것은 새로운 규정이 아니옵니다. 항차 세상에서 말하는 백이라는 이름의 부합이 시대가 다르기는 하나 그 모습 벽립천인(壁立千仞) 할 것입니다. 장차 여섯 분의 절개와더불어 영원토록 보존 될 것으로 이곳에 불가불 조려(趙旅)의 사당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사우에 불가불 여섯 분을 병향 하지 않을 수 없음은 진실의 궁극(窮極) 함이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옵서는 조령(朝令)의 구애 없이 특사(特賜)의 허락(許諾)을 예조에 내려 주시옵소서.
숙종실록 권38 숙종 29년 시월 을유일.


묘소는, 함안군 군북면 강주리 응암 갑자원이며 배(配)는, 증(贈) 정부인(貞夫人)흥양(興陽)이(李)씨 현령(縣令) 운(運)의 따님이며 상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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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이용자는 언제나 자신의 정보를 열람, 정정하거나 삭제를 요청할 수 있으며, 함안조씨 대종회 는/은 요청을 받은 즉시 삭제 등 처리를 해야 한다.

⑤ 개인정보 관리자를 한정하여 그 수를 최소화하며 해당 담당자로 하여금 개인정보의 분실, 도난, 유출, 변조 등에 의한 책임을 지게 한다.

⑥ 개인정보의 수집목적 또는 제공받은 목적을 달성한 때에는 당해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폐기한다.


제 18 조 (지급정보의 보호)


① 함안조씨 대종회 는/은 고객이 안심하고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지급 정보 보호를 위해 최선의 제도적, 기술적 장치의 노력을 다 한다.

- 개인 신용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의 보안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한다.


제 19 조 ((주)동산밸브 의무)


①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설치된 서비스용 설비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에 적합하도록 유지하여야 하며 서비스용 설비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또는 그 설비가 못쓰게 된 경우 그 설비를 수리하거나 복구한다.

②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서비스의 제공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본인의 승낙없이 제 3 자에게 누설, 배포하지 않는다.

③ 제 2 항에도 불구하고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국가기관의 요구가 있는 경우나, 수사상의 목적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의 제시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④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서비스 내용의 변경 또는 추가사항이 있는 경우 그 사항을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 화면에 공지한다.


제 20 조 (이용자의 의무)


① 이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1. 다른 이용자의 이용자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

2. 서비스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함안조씨 대종회 사전 승낙 없이 이용자의 이용이외의 목적으로 복제하거나 이를 출판, 방송 등에 사용하거나 제3 자에게 제공하는 행위

3. 다른 이용자 또는 제 3자를 비방하거나 중상모략으로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

4.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내용의 정보, 문장, 도형 등을 타인에게 유포하는 행위

5. 반국가적, 반사회적, 범죄적 행위와 결부된다고 판단되는 행위

6. 다른 이용자 또는 제 3자의 저작권 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

- 자료의 Upload시 저작권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게시자가 진다.

7.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되는 행위

② 이용자는 이 약관에서 규정하는 사항과 서비스 이용안내 또는 주의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③ 이용자가 설치하는 단말기 등은 전기통신설비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이 정하는 기준에 적합하여야 하며, 서비스에 장애를 주지 않아야 한다.




제 5 장 저작권


제 21 조 (게재된 자료에 대한 권리) 서비스에 게재된 자료에 대한 권리는 다음 각 호와 같다.


① 게시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게시자의 동의 없이는 이를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단, 비영리적 목적인 경우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게시자의 동의 없이도 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서비스내의 게재권을 갖는다.

② 게시물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게시자 당사자가 진다.

③ 게시자의 사전 동의가 없이는 이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가공, 판매하는 행위 등 서비스에 게재된 자료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제 6 장 이의 신청 및 손해배상 청구 금지


제 22 조 (이의신청금지) 이용자는 함안조씨 대종회 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시 발생되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이의 신청 및 민원을 제기할 수 없다.


제 23 조 (손해배상청구금지) 이용자는 함안조씨 대종회 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시 발생되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함안조씨 대종회 및 관계 기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으며 함안조씨 대종회 은/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부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7년 01월 일부터 시행합니다.​